사이메이(코교쿠) 여제 이야기

짓고, 또 싸운다

Becoming empress again

건축 & 전투. 풍요롭고 강건한 국가를 목표로 자유분방하게 돌진하며 뛰어난 재주를 발휘했던 여제. 그 갑작스런 최후에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슬퍼하였습니다.

用石头让飞鸟变得富丽堂皇돌로 아스카를 풍요롭고 화려하게

아스카에서 중조한 사이메이 여제는 당나라 및 조선 삼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국제적인 도시를 목표로 대형 토목공사에 착수했습니다. 특히 석재를 풍부히 사용한 많은 건조물이 특징. 근년 연이어 발견되고 있는 기묘한 석상과 견고한 돌담 등은 고고학 팬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급한 토목공사라는 비난을 받았던 대운하 “타부레고코로노 미조(미친 수로)”는, 논밭의 용수로 또는 적의 침입을 막는 참호로 전용할 수 있도록 건설된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선견지명이 있던 사이메이 여제는 돌이 갖는 영원성에 강하게 매료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전투의 끝에 찾아 온 신비로운 죽음

백제의 재기를 위해 나니와즈를 출발하여 세토 내해를 건넌 다음, 큐슈로 향하던 사이메이 여제. 도중 들른 니키타츠(현 헤 마츠야마 시 부 근 해 변 ) 에 서 여 성 관 료 인 누 카 타 노 오 키 미 공 주 가 “니키타츠에서 배의 출발을 기다리는데, 달이 떠 물길도 항해를 격려하네. 자, 노를 젖자.”라고 읊은 노래가 병사들을 고무시켰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윽고 츠쿠시의 아사쿠라 궁에 들어가지만 이 아사쿠라 궁을 지으면서 아사쿠라 신사의 나무를 벌채해서 도깨비불이 나타나, 시중들던 많은 이들이 병으로 사망. 이어서 사이메이 여제 자신도 급사하였고, 장례식에는 도깨비가 나타났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도깨비에 대해서는 아사쿠라 산의 신이라는 설, 소가노 이루카의 원령이라는 설 등 여러 설이 있지만 물론 정체는 수수께끼에 싸여 있습니다. 사욕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반생을 바친 사이메이 여제. ‘내 무덤을 지으려 노역을 모으지 말라’는 말을 나카노오에 황자에게 남기고, 68세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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