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이코 여제 이야기

해 뜨는 곳의 천자(天子)

냉정하게 상황을 꿰뚫어 보고, 여성다운 꼼꼼한 마음 씀씀이와 현실적인 사고 방식으로, 차근 차근 발전을 도모합니다.

수의 양제를 화나게 한 “해 뜨는 곳의 천자(天子)”

607년, 오노노 이모코가 제2회 견수사로 파견되었을 때 보낸 국서를 보고, 양제는 자신과 같은 ‘천자’를 일본 천황이 자칭했다며 “야만적인 편지이다”며 격노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제가 배세청을 답례 사자로 일본에 파견한 것은, 당시 수 나라와 고구려의 대립이 격렬해져 고구려 토벌을 계획 중인 와중에 일본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반도의 백제와 신라가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양제도 인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수와 일본 사이에 대등 외교의 길이 열렸고, 이후 중국 황제와 군신 관계가 아닌 독립국으로서의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와 선진 문화를 배우기 위한 견수사

견수사의 목적은 오노노 이모코 일행이 많은 불전, 서적 등을 가지고 온 것에서알수있듯이불교와선진문화를배우는것에 있었습니다. 이이를 위해 스이코 여제는 배세청의 구국에 맞춰 견수사로 파견하게 된 이모코와 함께 타카무코노 쿠로마로, 미나부치노 쇼안, 승려 민 등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들 유학생, 유학승이 수의 정치 방침인 중앙집권제도와 율령제, 세제 등을 배워 일본에 전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반도 정세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장점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1
  2. 2
  3. 3
  4. 4
  5. 5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