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이코 여제 이야기

대륙의 기술로 풍요롭게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끝까지 지킨 스이코 여제. 외교를 통해 접하게 된 새로운 문화를 도입하면서 계속된 국가 번영을 위해 힘씁니다.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수 나라에서 돌아온 견수사는 불전 뿐 아니라 여러 새로운 문화를 가져왔습니다. 달력, 천문학, 지리, 음악, 약학 등 당시의 최신 문화가 들어온 것입니다. 또 수 나라의 정치 제도도 도입 하였습니다. 물론 스이코 여제는 천황가가 예부터 정치의 근간이었으며, 많은 이가 믿고 받들어 온 ‘국가의 신’을 버리고 불교만 신앙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599년에 일어난 대지진 때 여러 나라에서 지진의 신을 제사 지내게 했고, 또한 607년에는“ 신하들은 마음을 다 하여 천신지기를 경배하라”는,‘ 경신(敬神) 칙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천신지기를 근본으로 하는 방책으로, 불교와의 충돌을 극복하려는 스이코 여제의 지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 나라의 새로운 문화도 일본의 전통 문화와 잘 융합시켜 가면서 적절하게 도입했던 것입니다.

약 구하기는 단오절의 시작

『니혼쇼키(일본서기)』(스이코 20년)에 ‘여름 5월 5일에 약 구하기를 한다. 하네다에 모여 함께 조정으로 간다’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약 구하기란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조정의 의식으로, 이 때는 하타미카이 신사 주변에서 여성은 약초를 캐고, 남성은 약효가 있는 사슴의 새 뿔을 얻기 위해 사냥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계기로 창포탕에 몸을 담궈 나쁜 기를 쫓는 단오절이 시작되었고, 하타미카이 신사가 있는 타카토리 정이 약의 고장이 된 유래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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