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이코 여제 이야기

우마야도 황자(쇼토쿠 타이시),정치의 최전선으로

대륙의 선진적인 문화를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우마야도 황자와 소가노 우마코가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서둘러 국가의 기초 다지기에 들어갑니다.

후진성을 털어내고 문명국을 지향한다

스이코 여제는 우선 불교를 둘러싼 다툼에 종지부를 찍고자 ‘삼보흥륭’의 칙령을 내려 불교 번영을 명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이미 우마코는 아스카데라 절을, 우마야도 황자는 시텐노지 절을 창건하기 시작했었습니다. 또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세 등으로 인해 백제와 고구려에서 잇따라 승려가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이 승려들은 불교 뿐 아니라 절의 건설을 비롯한 최신 기술, 학문, 예술, 문화 등도 함께 전래하였습니다. 그리고 603년, 지금까지의 궁전과는다른새로운양식의오하리다노미야궁전이 완성되었습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 제도 정비

스이코 여제는 오하리다노미야 궁전으로 천도한 후, 우마야도 황자 및 우마코와 함께 진행해 오던 관위 12계를 제정하여 조정의 관료 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유교의 덕, 인, 예, 신, 의, 지를 대소로 나누어12계를나누었고,관의색깔과장식으로지위를 표시했습니다. 그 때까지는 태어난 집안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세습 씨성제도였으나,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가 재능과 공적에 따라 개인에게 지위를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승진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후에 위계제의 기초가 됩니다. 그리고 17조 헌법을 발포. 이는 현재의 헌법과 달리“ 화합을 소중히 한다” 등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 호족과 관료가 지켜야 할 규범이었습니다. 이렇게 획기적인 개혁이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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